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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광화문이 왜 있는 것인지, 조선 시대 때 어떤 역할을 하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못하다. 나도 부끄럽게도 얼마 전까지 이슈의 중심이 되는 곳, 세종대왕의 동상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고 박물관이 있는 곳이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경복궁과 광화문에 어떤 관련성이 있다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광화문에서 경복궁까지 걸어가는 것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실을 신기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광화문의 光化는 왕의 크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를 가진다. 내가 사진을 멀리서 찍어서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오른쪽에 있는 동물모양의 동상은 해태 조각상이라고 한다. 해태란 동물은 전설 속에 존재하는 동물인데 옳지 않은 일을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 뿔로 받아 버린다는 영물로 알려져 있다.

해태상의 앞에는 자 모양의 돌이 있는데 이 돌은 왕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하마(下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해태앞에서부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걸어서 궁으로 들어가야 했다. 광화문에는 문이 세 개가 있는데 좌우의 문은 신하가 지나다니는 문, 가운데 있는 문은 왕이 지나다니는 문이었다.

 



 

지금처럼 화려하고 종로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광화문도 언제나 이런 풍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방화되어 소실되면서 광화문 또한 같이 소실되었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재건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서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광화문의 위치를 옮겼고, 한국 전쟁 때는 목조부분이 불에 타서 없어졌다. 1968년 석축은 그대로 두고 현판은 새로 만들고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자리는 경복궁의 본래축이 아닌 총독부건물의 축에 맞춰 재건하였으나, 이는 겉모양을 복원하는 것에 불과하여 1995년 문민정부에서 2003년에 광화문을 다시 철거하고 20103월 완벽한 광화문 복원을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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