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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게이들 오늘은 워털루 전투에 대하여 알아보자.


아.. 3시간동안 쓴글이 날라가서 멘붕이지만. 다시해보자.


일단 저번글에서 가독성 ㅆㅎㅌㅊ라는 지적이 많았어. 내 필력이 ㅆㅎㅌㅊ라서 그런걸 어쩌겠盧...


필력을 늘리도록 노력해 보겠다. 이제 워털루 전투에 대해 알아보자.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나폴레옹은 다음해 독일에서 라이프치히 전투를 벌이지.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엘바섬에 유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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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전투.


그러나 빈 회의에서 연합국이 전후처리문제로 다툼이 일어난 사이 1815.2.26 엘바섬을 탈출해


프랑스정부는 네원수와 술트장군에게 그를 체포하라 명하지만, 그 둘은 오히려 나폴레옹 휘하로 들어가.


결국 나폴레옹은 7,000여명의 군대를 이끌고 3.20에 파리에 입성하는데 성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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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입성에 성공한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제정의 부활을 선언하는 한편, 다른 유럽국과 화친을 청해.


그러나, 유럽의 여러국가들은 나폴레옹의 존재가 껄끄러웠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민주화시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았기에,


화친제의를 단칼에 거절하고, 연합국중 네덜란드 지방에 주둔하던 영국군과 국경을 맞닿은 프로이센군이 쳐들어오지.


나폴레옹은 기존의 정예병과 신규 모집병을 벨기에 지방으로 진군시켜. 반면, 영국군은 95,000여명, 프로이센군은 113,000여명 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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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와 엘바섬의 위치.


그러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대육군과 근위병이 건재한상황. 


따라서 나폴레옹은 이 둘을 각개 격파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 계획을 실천에 옮겨


먼저 네 원수에게 병력 20,000여명을 주어 카트르 브라에서 영국군을 기습하여 시간을 끌고,


자신은 직접 80,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6.16 리니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민주화 시켜버리는데 성공해. 그러나 프로이센군은 다행히도 후퇴하는데 성공해.


그러나 리니전투에서 블뤼허 장군이 중상을당해 프로이센군의 실질적 수장은 그나이제우 참모장이 돼.


여기서 나폴레옹은 한가지 커다란 실수를 저질르지. 그건바로 그루시 원수에게 30,000에달하는 병력을 주어 프로이센군을 추격하게 한것이지.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이 완전히 패주하여 전장을 이탈하는 줄 알고 그루시에게 동쪽으로 향할 것을 지시했으나,


프로이센군은 영국군을 지원하기위해 몽-생-장 방향인 서쪽으로 진군해.


g.jpg 

프랑스의 그루시 장군, 그는 좋은 군인이었으나, 고지식함으로 인해 나폴레옹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힌다.


아무튼, 프로이센군이 민주화 당함에 따라 영국군의 총지휘관 웰링턴은 몽-생-장으로 후퇴하여 프로이센의 지원군을 기다려.


C.pngD.jpg

영국의 웰링턴 공작(좌) 프로이센의 블뤼허 장군(우)


폭풍이 치는 밤에 후퇴한 웰링턴 장군의 영국군은 프랑스군이 서쪽으로 회전하여 들어올것을 염려하여, 우익을 강화하는 한편,


보병을 앞쪽으로 전개하고 기병을 뒤쪽에 포진시키지. 그러나 웰링턴의 예상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영국군과 바로 마주보는 방면으로 치고 들어와.


a1.png 

워털루 전투 전도.


반면 나폴레옹은 보병을 전면에 배치하고 양익에 기병대를 배치, 중군에는 근위대를 결전용 예비대로 배치해.


h.jpg h2.jpg 

프랑스 전열보병(좌) 영국 전열보병(우)


i.jpg i2.jpg 

프랑스 기병(좌) 영국 기병(우)


나폴레옹은 아침 9시에 공격을 하기로 결정 하였었으나, 전날밤에 비로인해 포병이 늦게 도착함에 따라,


공격 개시를 11시로 결정하였고. 이는 나폴레옹의 결정적인 패배의 원인이돼,


교전국
프랑스 프랑스 제국 영국 영국
네덜란드 네덜란드 연합 왕국
Flag of the Kingdom of Prussia (1803-1892).svg 프로이센 왕국
Flagge Herzogtum Braunschweig.svg 브라운슈바이크
하노버
Flag of Herzogtum Nassau.png 나사우
지휘관
프랑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미셸 네
영국 웰링턴 공작
Flag of the Kingdom of Prussia (1803-1892).svg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병력
보병 56,000
기병 16,000
대포 246문
총병력 7만 2000명
영국 6만 8000명
(영국독일벨기에네덜란드 연합)
Flag of the Kingdom of Prussia (1803-1892).svg 4만 5000명
총병력 11만 3000명
피해 규모
2만 5000명 사상
9000명 포로
1만 5000명 실종
총 피해 4만 9000명
웰링턴군 : 1만 5000명
블뤼허군 8000명
총 피해 2만 3000명

웰링턴 전투 참가현황-출처 위키


오전 11시 프랑스군의 포격과 함께 전투가 개시돼.


k.jpg 

워털루 전투 포메이션1~프로이센군 개입전까지.


프랑스 포병대는 보병사단의 진로를 여는 한편 영국군 우측에 전략적 가치가 없는 우구몽 성 저택에 포격을가하여,


영국군의 시선을 돌리려고 시도하였지만, 웰링턴 장군은 이를 알아채고 우익을 좀 더 보강하였을뿐, 예비대를 사용하지 않아.


웰링턴은 몽-생-장의 능선 지형을 활용하여 프랑스군의 포격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몽-생-장의 능선 응딩이 뒤에 숨어 프랑스군의 포격을 피한거야.



gl.jpg 

이렇게 말이지.


어차피 웰링턴 공작의 목표는 방어하면서 프로이센군을 기다리는 것이었거든.


나폴레옹은 그루시의 30,000군대를 불러들이기위해 술트 원수에게 전령을 보내라 지시하지만,


술트는 1명의 전령만을 보내고, 이는 그루시를 불러들이는데 실패하게 돼.


그루시를 불러들이는 동시에 나폴레옹은 생-몽-장에 맹렬히 포격을 퍼붓지.


그러나 웰링턴 공작이 포격을 맞아줄리가 없잖아? 게다가 정오를 지나면서 프로이센군이 전장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하지.


이에 나폴레옹은 도몽장군 휘하 4개사단을 프로이센군을 막는대 보내. 이병력은 예비대로 쓰여야했지만 그렇지 못했지.


오후 1시를 넘어서자, 에르몽장군 휘하 4개사단이 영국군 중앙으로 진격해 들어가. 이들은 영국군 우측 방면


라-에-상트를 격전끝에 함락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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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 포메이션2 도몽군단의 이탈과 라-에-셍트의 점령.


이에 고무한 나폴레옹은 흉갑기병대를 전진시켜, 그러나 웰링턴 공작은 영국 중기병 2개여단을 보내 응수해.


이들은 흉갑기병대를 민주화 시켜버리고 프랑스 포병대를 향해 진격해 들어오지.


그러나, 이들의 좌측으로 프랑스 창기병대가 쓰나미가 밀려오듯이 밀려와 이들을 개박살내버려.


n.jpg 

폴란드 창기병.


그 사이 에르몽장군 휘하 프랑스 보병대는 영국군의 제1 방어선을 뚫는데 성공해.


그리고 제2 방어선까지 진격했지만, 픽튼 장군의 영국군 5사단을 맞이해 픽튼장군은 전사시키지만, 방어선을 뚫는데 실패해.


보병의 진격과 기병의 진격까지 막힌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이 오고있다는 소식에 빨리 영국군을 끝내고자 다시 포격을 지시해.


그러나 영국군은 재빠르게 몽-생-장능선의 응딩이 뒤로 숨어버리지.


이때, 네 장군의 결정적인 병크가 일어나. 네 장군은 이를 영국군이 후퇴한다고 판단.


보병의 지원없이 직속기병과 근위기병을 합쳐 기병 5,000기를 이끌고 영국군 진영으로 닥돌하지. 나폴레옹이 이를 말렸으나


좆이나 까잡수세요^오^ 하고 멍청하게 들이 박아버려.


웰링턴 장군은 "오미.. 시방 저것이 뭐시당가? 보병지원없는 기병 아니여?" 라고 외치며


26개 대대로 13개의 방진을 만들어 대항해. 따라서 네 장군의 병크 닥돌은 실패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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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장군의 병크. 프랑스 기병대의 닥돌.



네 장군의 병크를 보여주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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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네 장군 그의 병크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혹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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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 포메이션3. 진격하는 네의 병크!


네 장군의 닥돌 작전이 실패한뒤 오후 3시경


이번에는 보병의 지원을 받으며 네장군이 다시한번 기병대 닥돌을 시전해.


다행히 이공격은 성공하여, 영국군을 뒤흔들지. 이에, 에르몽사단이 다시 진격 영국군의 좌익을 초토화 시켜버려.


네 장군은 이것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 나폴레옹에게 증원병력을 요청해.


"아따 황제님 병력 지원 쪼매만 해주면 이 전투 잡는당께요? 싸게 병력 지원좀 해주쇼!"


114.PNG 

치열한 웰링턴 전투 현장.


그러나 이미 예비대를 프로이센을 막는대 쓴 나폴레옹은 이를 단칼에 거절해버려.


결국 오후 6시경 프로이센군은 도몽군단을 깨버리고 영국군 좌익에 도달하지.


이들은 민주화 당한 영국군대신에 영국군 진영에 좌익을 맡게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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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 포메이션3 프로이센군의 지원과 프랑스 근위대의 진격.


이에 웰링턴 공작은 보병을 4열 횡대로 산개시켜 몽-생-장 응딩이 뒤로 배치하지.


나폴레옹은 친히 근위대를 이끌고 진격 몽-셍-장의 마루를 점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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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패의 프랑스 근위대. 이들은 영국군의 일제사격에 민주화 당해버린다.


그 순간 몽-생-장에 응딩이 뒤에있던 영국 보병들이 일제사격을가해.


그리하여 일거에 프랑스 근위대는 개박살나고. 프랑스군 우측에서는 프로이센군이 진격하기 시작하지.


이때 미처 투입하지않은 베테랑 근위대가 나폴레옹을 호위하고 전장에서 이탈해.


이로써 나폴레옹의 100일천하는 막을내리고 말아.


l.jpg

워털루 전투 요약도.


출처: http://www.ilbe.com/index.php?_filter=search&mid=ilbe&search_target=title&search_keyword=%EC%A0%95%EB%B3%B4&document_srl=227116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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